34.금각사,은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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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 이미지 금각사와 은각사
교토(京都). 이름만 들어도 무언가
일본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일본에 대한 관광 안내책에 꼭 한 페이지
정도는 빠지지 않고 이 곳의 예쁜 사진이
나와 있어서, 일본이 다 그런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 . .
교토와 한 시간 정도의 거리인 오사카에
살게 되었지만 도착하고 짐을 풀자마자
단번에 구경을 가기는 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언젠가 아는 사람들이 며칠
우리 집에서 묵게 되었고,
전면에서 본 금각(金閣) 이 이외에는 볼거리가 없다.
자연히 그들의 관광 안내를 해 주면서 우리도 교토를 제대로 볼 기회를 가졌다. 말로만 듣던 곳을 직접
보게 되다니 마음은 들뜨는데... 마땅히 타고 갈 자동차도 없고, 교토의 지리도 잘 모르기 때문에 일단
교토역(JR京都驛)까지 전철로 가서 그 앞에서 출발하는 시내 관광 버스를 타기로 했다.
"교토정기관광버스(京都定期觀光Bus)"는 교토 전 지역을 목적에 맞게 세세히 나누어 대충 26코스가
있는데, 우리는 그 중에서 낮 동안에 5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京の半日)를 1인당 거금 5350엔(약55000원)을
내고 탔다. 좀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제일 유명한 네 군데(金閣寺, 淸水寺, 知恩院, 平安神宮)를 돌고
점심도 준다고 하니... 입장료와 지리를 모르는 상황에서의 교통비를 생각하면 이 방법이 싸고
편하지 않은가...
그런데 버스가 출발하면서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목적지인 "금각사(킨카쿠지, 金閣寺)"까지
가는 동안 안내원이 쉬지도 않고 여기 저기 보이는 곳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 '여행의 여유'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좀 낫겠지 싶었는데 또 한 번 황당... 버스에서 내리는데
이 곳을 20분만에 보고 돌아오라고 한다. 갑갑한 마음으로 제한 구역 외에 사람들 가는 방향으로 따라
들어가니 연못이 있고, 사진에서 본 금각(金閣)이 번쩍이고 있었다. 기념 사진은 찍어야겠기에
연못 주위에 쫙 늘어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을 비집고 겨우 한 장. 그리고는 금각 근처로 빙 돌게 되어있는
관람 길을 따라 사람들에 밀려서 구경하고 나오니 찻집이 한 군데 있고 선물가게들과 화장실.
비싼 돈 내고 멀리서 와서 금각 한 번 만져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이 것이 20분간의 금각사 구경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20분이란 시간이 적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절 자체가 어느 정도 큰 지는 몰라도
관광객이 다닐 수 있는 곳은 이 코스가 전부이므로 더 많은 시간이 있다고 해도 구경거리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이 곳 외에 다른 세 곳 구경도 이런 식이었다. 구경시간 보다 길바닥에 버린 시간이
더 많은 버스관광. 이 이후로는 구경을 조금만 하더라도 내 발로 걸어다니며 천천히 보는 쪽을
택하게 되었다.
이유 없는 막연한 호기심에 보고 싶어했던 금각사의 실제 이름은 "로쿠온지(鹿苑寺)"이다.
(실제로 이 금각 앞에 팻말이 하나 있는데 금각이 유명하긴 하지만 절 이름은 아니라고 쓰여있다)
이 절을 대표하는 금각(金閣)은 원래 1397년에 세워졌으나 1950년 불에 타버리고,
현재 있는 건물은 1955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연못과 건물 하나가 무슨 의미가 있길래 끊임없이
관광객들이 이처럼 몰리는지...
이 절은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 1336-1573)의 초기 3대장군인 아시카가요시미츠(足利義滿)가
자신의 권력의 상징으로 지은 별장(山莊北山殿)을 그의 사후(死後) 선종(禪宗)의 절로 바꾼 것이다.
이 시기는 무사들(武家)의 정권이 세력을 잡고는,
이전부터 내려오던 귀족들(公家)의 문화를 흡수 융합하면서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나갔는데, 초기에는 교토 북쪽에 있는
산 근처를 중심으로 발달하여 키타야마문화(北山文化)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로쿠온지는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강력한 무사 문화 속에서 귀족들이 선호하던 불교 선종(禪宗)의
영향을 받은 이 절은 부처님의 뼈를 담은 함이 모셔진 금각과 정원
그리고 연못을 통해 금세(今世)에서의 화려하면서도 절대적인
극락(極樂)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옛날 건물 주인은
이런 곳에서 우아하게 세상을 바라보았는지는 몰라도, 현재의
관광객들은 수박 겉 핥듯이 후다닥 보고 가기 때문에 극락을
어디서 느낄 수 있는지....
은각사의 안내지인데, 실제 은(銀)을 볼 수 없고, 비에 젖은 돌 바닥이 은색으로 보인다.
교토에는 이 금각사와 비교되는 또 하나의 절이 동쪽 산
근처에 있는데, 이름하여 "은각사(긴카쿠지, 銀閣寺)"이다.
물론 이 절도 실제 이름은 "토오잔지쇼오지(東山慈照寺)"이며,
절 건물 중의 하나인 관음전(觀音殿)을 은각(銀閣)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이 절은 금각사 보다 늦게 다른 권력자의 별장으로 1482년에
세워졌으며,
무로마치시대의 후기 문화인 "히가시야마문화(東山文化)"의
발상지(發祥地)가 되었다.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로
일컬어지는 다도(茶道), 꽃꽂이(華道), 향나무를 태워서
그 향을 즐기는 것(香道) 등이 이 별장(나중에 절로 바뀜)에서
시작된 것이다. 금각사를 갔던 시기와는 다른 때에
또 그 이름에 속아서 찾아가 본 것인데 역시나...
정문에서 가운데 문까지 들어가는 길의 높은 담.
입장료 500엔을 내고 정문을 들어서니,
중간 문까지 약 50m정도 길이의 대나무와
나무를 이용한 높은 담이 있었다.
여기를 사람들에 치여서 줄지어 천천히 따라
들어가니 전면에 작은 정원과 언덕이 있고,
오른쪽으로 연못과 은각(관음전)이 보였다.
이 보이는 세계가 이상(理想) 속의
극락(極樂)이라고 한다.
여기를 들어오기 위해 먼저 담이 있는 골목은
바깥 세상과의 중간 단계로,
사람들이 마음속의 번뇌를 다 씻어낼 수 있도록
여유를 두는 공간인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정원을 보면 하얀 모래로 만든 물결 모양의
"긴사단(銀沙灘)"을 따라 어디론가 흘러갈 것만 같다.
물결 모양의 모래와 멀리 은각(銀閣)인 관음전이 보인다.
달빛이 은은히 비칠 때면 이 모래들이 마치 호수의 표면처럼 빛나며, 이 광경을 보는 사람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선(禪)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고 하는데...
고즈넉하면서도 어딘가 정갈한, 절제의 미를 살린 이 이미지는 요즘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젠 스타일(Zen style, 禪의 일본식 발음을 그대로 빌려온 말이다. 1950년대부터 서양에서
禪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일본인 승려에게서 배운 禪을 통해 받아들여진 일본풍의 여러 이미지들)"의
원조(元祖)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인들에게는 '젠 스타일'이라고 불려지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자신들의 기품 있는
문화이기 때문에 '와후우(和風)'라고 하며, 여기 뿐만 아니라 교토 전체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불교적 정신세계를 현실세계에 잘 접목한 표본이라고 여긴다. 서양인들이 일본에 반하고,
일본인들이 교토를 동경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점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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