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을 잘둔다는 프로기사들,
조남철 조치훈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등등 많아서 이름도 잘 기억에 었다.
대부분은 일본에 가서 사사받거나 좋은 스승을 두고 있다.
단지 스승없이 거리에서 내기바둑으로 바둑계의 거목이 되었던 서봉수 9단,
대단한 인물이다.
바둑판은 네모꼴로 가로·세로 19줄 361점이다. 흑백으로 편을 나누어 361점 위 적당한 지점을 중심으로
서로 한 점씩 번갈아 진을 치며 싸워 그 차지한 점(집)이 많고 적음으로 승부를 가린다.
바둑이 중국에서 발생한 것만은 확실하나 언제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요 임금과 순 임금이 각각 어리석은 아들의 머리를 깨우치려고 바둑을 창안했다는 전설적인 기록이 있으나
믿기는 어렵다. 한편 고누와 같은 단순한 놀이가 오랜 역사발전과 더불어 개량·보완·발전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점을 치기 위한 도구 또는 천문관측과 초기 음양오행설의 소박한 도표가 시대상황의 변천에 따라
변질·발전된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우리말인 '바둑'을 지방에서는 바독 또는 바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문헌을 보면 '배자'라는
표현이 있는데 배자의 '자'(子)는 돌, 독으로 배돌-배독-바독-바둑으로 변한 것이 아니겠냐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이 명칭은 신라시대부터 써내려와 순수한 우리말이 되었다고 한다.
속세에서 바둑을 잘 두는 이가 있었다.
스스로도 그러했고, 다른 이들도 그의 바둑 실력은 인정하는 바 였는데,
그는 자신 만만한 바둑 실력으로 당대의 고수인 고승과 겨뤄 보기로 하고
고승을 찾아 길을 나섰다.
고승은 산속 깊이 살고 있었는데
여러 곳에 수소문한 끝에 고승이 거처하는 산을 알아내어 찾아 갔다.
깊은 산이라서 산길을 한참 걸어 절의 입구에 다다랐다.
고승이 거처하는 곳은 입구에서도 한나절 정도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입구에서 한 동자승이 마중을 나와 공손히 인사를 하고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걸음을 옮기며 그는 동자승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내가 오는 것을 알았느냐 ?"
"스님께서 손님이 오신다고 내려가 모시라고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요즘 바둑을 두시느냐 ?"
"저와 둘이만 있기 때문에 가끔 저와 두십니다."라고 했다..
"그럼 너도 바둑을 둘 줄 아는구나 ?"
"네 조금은 둘 줄 압니다."
"그럼 가는 동안에 나와 한번 두어보겠느냐 ?"
"네, 그렇게 하시지요"
둘은 걸으면서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바둑판도 바둑알도 없이 말로서 알의 위치를 놓는
그야말로 고수들의 바둑이었다.
한 수 한 수 더해가서 50수 정도 두던 그는 새삼 놀라며
이 어린 동자승이 이렇게 잘 둘 수가 있을까 하며 놀랬다.
잠시 후 그는 결국 동자승과 바둑 두기를 포기하고...말았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동자승은 빙그레 웃었다.
그는 고승은 커녕 고승이 거처하는 곳에 조차 가보지도 못한채
산을 내려오고 말았다.
俗世와 仙世의 차이이다.
인간이 보는 원숭이...
자라투스트라가 보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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