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여담...

3. 담배이야기.

젝심상사 2008. 10. 6. 19:26

 일본의 옛날 봉건시대 시절,  

어느 성에 살고 있던 공주(15-16세쯤)에게 소원이 하나 있었는데,

그 소원은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과 Kiss를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당돌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지만,  떨어진 낙엽이 구르는 것만 봐도

까르르 웃는다는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이기에 상상은 간다.

그러한 소원을 이루겠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인 왕의 명령으로 결혼을 하게 되는데,

물론 이웃의 성에 사는 왕자와의 혼인을 맺은 정략결혼이었다.

그로부터 고민에 쌓인 나날을 보내게 된 공주는 만약 결혼을 하게 되면,

자신의 소원은 영영 이룰 수 없게 되므로 슬픈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소원을 이루지 못할 바에는 사는 의미도 없는 것이므로 차라리 죽어 버리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고,,, 결혼식 전날 자살을 하게 된다...

 

 공주의 시신은 그녀의 방 참문 앞에 있는 정원에 뭍혔고,

많은 조문객들(주로 남자들)은 그 사연를 듣고  몹시 안타까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덤위에 싹이 트이더니 잎이 무성한 풀이 되었다. 

성을 다시 찾은 남자들은

그 녀를 생각하며 조문을 하고 무덤위의 풀잎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입을 맞추며 깊이 생각하던 한 남자가 잎을 따서 약간 말리고,

불을 붙이고 입으로 빨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담배나무였다.

다른 남자들도 그녀와의 입맞춤을 오래하고 싶어서 잎을 태웠다(피웠다).

 그로서 그 소녀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일까 ?

그 공주의 이름이 束子(たばこ,tabaco,타바코)였다. 그래서일까 ?

담배의 이름은 煙草(연초, たばこ)이지만 일본어로는 타바코이다.

많은 남자들이 담배를 피우게 된 사연이 담긴 담배의 유래이다.

 

 우리나라에 들어 온 담배는 곰방대를 이용하여 피웠으며 권위의 상징이었다.

계층의 높고 낮음에 따라 곰방대의 길이가 달랐다. 이동인(스님)이 일본에서

성냥을 들여오기 전까지 부싯돌로 불을 붙이던 시절,  계급이 높은 양반층은

긴 곰방대에 자신이 불을 붙일 수 없어 불 붙이는 동자를 항상 동행케 했다.

 

 병자호란 당시 청으로 끌려간 부녀자(어머니, 아내, 딸)를 찾아오는데 담배가

이용되었다. 담배 약 한가마니에 한 명씩 교환이 가능했다.

유교의 일부 터무니없는 사회관 때문에 한 사람 몫을 가지고 가서 살아있는

아내가 아닌,,, 죽은 어머니를 찾아오는 일도 있었다. ...

 

 가장 많이 피운 사람(애연가, 골초)으로는 시인 오상순 선생이 있다.

하루 중 아침, 저녁에 성냥을 한번씩 켠다고 했다. 밥 한숫가락에 담배 한 모금

인 셈이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 피운 사람으로 유명하다.

전매청에서 담배 값을 올릴 때에는 반드시 선생에게 담배를 두 박스(2천갑?)씩

갖다 드렸다. 그의 호는 "공초"이다.

그의 시 보다 그의 담배 이야기가 훨씬 더 유명하다. 

 

 민족의 스승 고당 조만식 선생(북한에서 김일성에게 사형 당하심)이 평양에서

여러 사람들을 모아 놓고 강의를 할 때, 함께 먹을 것도, 마실 겄도 없어서...

"여러분 우리 모두 담배 한개피를 입에 물고 같이 피웁시다" 라고 하였다.

함께 있던 모든 사람에게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구심체 역할을 하게 한 것이었다.

 

 백해무익한 존재가 되고,

만인에게 온 세상에 피해를 주는 천덕꾸러기로 전락버린

담배의 역사에는 이외에도 숫한 이야기가, 슬픔과 애환이, 에피소드가 있다.

 

* 선생 ;

선생이란 단어자체가 존경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선생님이라 하지 않는다.

어떤 놈(대텅자리에 있으면서 온갖 해악한 짓거리만 잔뜩 저질러논 놈)처럼

온 민족이 선생 대우하는 분(월남 이상재 선생)에게 아무개씨라고 하면 아니된다. 

 

젝심상사